오데사의 계단
함경아
오데사의 계단
함경아(1966-)는 사회의 현상을 탐구하며 그 이면에 자리 잡은 사회적 체계, 문화, 종교 등을 내보인다. 작가는 일상적이고 사적인 실마리에서 시작하여 보이지 않는 사회, 정치, 문화적 근간을 추적해 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개진해 왔다. 우리의 일상은 무엇이며 그 기저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관찰하고 사유하는 작가는 주관적인 계기로부터 세상을 집요하게 탐구하는 작업으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의 좌표 속의 개인을 자각하게 하는 작업들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오데사의 계단〉(2008)은 군부독재정권의 한 전임 대통령의 집을 개조하는 과정에서 버려진 가구나 자재들을 모아 작품으로 제작한 것이다. ‘오데사의 계단’은 현대영화사의 기초를 다지는 데에 주요한 영화로 평가받는 에이젠슈타인(Sergei M. Eisenstein, 1898-1948) 감독의 영화 〈전함 포템킨〉(1925)에서 러시아 혁명기 양민 학살 장면의 배경이 된 장소이다.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이 탄압을 받았던 역사적 사실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정치적 탄압의 사건에 비유되고 있는 셈이다. 나무로 된 계단이 위압적인 크기로 표현된 작품에는 집에서 나온 낡은 문짝과 창문, 의자, 변기, 골프화, 확성기 등의 물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계단 아랫 쪽에는 텔레비전과 슬리퍼, 축구공, 화분 등 일상적이고 사적인 소품들이 안락한 공간 안에 자리하고 있다. 반면 계단 앞쪽에는 쇼핑 카트가 마치 영화 속에서 계단을 굴러 떨어지는 유모차가 등장했던 것처럼 위태롭게 걸쳐져 있고, 계단 사이사이에 권총이나 쇠파이프, 감시카메라 등 위화감을 조성하는 물품들이 있다. 〈전함 포템킨〉은 시공간을 요약적으로 보여주는 몽타주 기법의 시초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도 여러 물품들의 조합으로 전임 대통령의 사적인 영역과 한국 정치사에 있었던 이슈를 편집하여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