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합 8
하종현
접합 8
하종현(1935-)은 1960년대에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며 앵포르멜 회화에서 기하학적 추상에 이르는 다양한 추상회화의 흐름을 실험하였다. 뿐만 아니라, 타성적으로 전통을 따르는 것을 거부하고 실험적인 예술정신을 기치로 삼았던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당시에 용수철과 밧줄, 철조망 등의 물질을 개입시킨 작품으로 유신정권에 암묵적 저항을 표하는 작품들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한편 새로운 조형질서와 물성에 대한 탐구를 심화시켜온 작가는 1974년 〈접합〉 연작으로 그의 작업세계를 대표하는 작업방식을 구축했다. 〈접합〉은 캔버스의 재료로 삼은 마포의 뒷면으로부터 물감을 밀어 넣고, 마포의 조직 사이로 배어난 안료를 천의 앞면에서 손이나 나이프로 누르거나 쓸어내는 방식으로 작업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캔버스의 앞면에 붓으로 물감을 얹어 그림을 그려 넣는 방식과 달리 마치 동양화의 기법 중 하나인 ‘배채법(背彩法)’처럼 뒷면에서 앞면으로 색채를 밀어내는 방식은 서구적 개념을 바탕으로 한 회화의 정의와 본질에 대해 질문하게 한다. 30년 넘게 지속되는 〈접합〉 연작은 1980년대 이후 비교적 고른 화면에 섬세한 물질성이 드러나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전반적으로는 황토색 또는 갈색, 청색 등의 단색이 전면적으로 활용되었다. 2010년부터는 점차 색채와 구성을 더 다양하게 작업한 〈이후 접합〉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
〈접합 8〉(1982)도 〈접합〉 연작 중의 하나로서 앞서 언급된 방식으로 작업되었으며, 점차 화면 위에 물감을 얹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화면의 앞과 뒤를 총체적으로 오가며 밀도를 쌓아가는 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성긴 마포의 틈 사이로 올라온 크고 작은 올들, 안료와 마포천이 상호 교접된 물질의 상태가 회화의 주된 요소로서 작가의 손길과 만나 고른 화면으로 표현되었다. 모노크롬 양식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다른 단색조의 회화와 달리 회화의 작업 방식에 대한 전위적인 실험을 통해 작가만의 고유한 조형언어를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