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정정주
거실
정정주(1970-)는 공간 안에서 빛의 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구조적으로 탐구한 작업과 공간에 카메라를 설치해서 응시의 관계를 다룬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는 초기에 사적으로 익숙한 공간들인 거실, 기숙사, 실내체육관 등의 공간 구조를 단순한 모델로 구현한 작업을 보여주었고, 이후에는 보다 도시적이고 공공적인 건축물의 모형을 만들며 사람의 감정과 연관하여 공간을 탐구했다. 나아가 3D 애니메이션의 형식으로 공간과 빛을 추상적인 차원에서 표현해내며 공간과 시선에 관한 탐구를 이어오고 있다. 실제로 경험하게 되는 공간과 카메라를 통해 모니터에 축소되어 나타나는 공간과 같이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접합되는 지점, 나아가 공간의 내외부가 시선을 통해 상호 조우되는 것들에 지속적인 탐구를 이어오고 있다.
〈거실〉(1999)은 책상 위에 놓인 거실 모형과 TV모니터로 구성되어 있다. 거실의 모형은 당시 작가가 독일에서 생활했던 거실을 작은 박스형의 모델로 만든 것이다. 거실 모형의 내부 한 쪽 구석에는 120도 각도로 좌우 회전하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거실의 내부 구조와 거실 공간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찍히고, 1/25초 단위의 프레임을 통해 모니터의 화면에 나타난다. 거실 내부는 가구들로 찬 공간이 아닌 빈 공간이며, 커다란 창의 위치와 크기, 유기적인 구조를 통해 거실이라는 공간임을 드러내고 있다. 관람객들은 전시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거실이라는 사적인 공간을 바라보는 낯선 경험에 이어, 화면 안에서 거실의 창 너머로 거실보다 더 큰 거인처럼 비추어지는 자신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낯선 지각을 하게 된다. 거실 모형 안쪽의 카메라를 통해 관람객은 역설적으로 자신이 시선을 두고 있는 내부 공간과 동시에 내부 공간에서 바깥을 향해 자신에 닿는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즉 거실 구조와 관람객, 카메라 사이에서 상호 교환되는 시선과 관람객의 중첩된 지각을 통해 공간과 시선에 대한 실험뿐만 아니라 현실세계에서의 미디어를 통한 응시의 복합적인 관계가 은유되고 있다.